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문단 편집) == 튀르키예인들의 존경 == 튀르키예에서 아타튀르크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은 그야말로 '종교'에 가까울만큼 열성적인데, 한국에 비유하자면 [[세종대왕]], [[이순신]] 둘을 합친 무언가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길거리 노점부터 대부분의 튀르키예 회사들까지 아타튀르크 사진이나 어록을 벽에 걸어두고 있다.[* 튀르키예 학교 교실에 들어가보면 튀르키예 국기와 아타튀르크 사진이 걸려있다.] 튀르키예의 모든 관공서 건물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아타튀르크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아타튀르크의 어록 중 하나인 "Hâkimiyet kayıtsız şartsız milletindir."('주권은 제한 없이 조건 없이 국민의 것이다.')라는 어록은 아타튀르크의 무덤에서부터 시작해 튀르키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도시에서 가장 큰 대로에는 아타튀르크 대로(Atatürk Caddesi)라는 이름이 붙고[* 그리고 아타튀르크 대로를 교차하는 그 다음 큰 대로는 거의 언제나 이뇌뉘 대로(İnönü Caddesi)가 된다.], 도시의 중심가에는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서 있다. 심지어 동상을 뜻하는 튀르키예어인 헤이켈(heykel)은 몇몇 도시에서는 '시내 중심가'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또한 현재는 화물 취급만 하는 공항이지만 튀르키예에서는 튀르키예의 관문이었고, 이스탄불 제1공항이었던 공항의 이름을 아타튀르크의 이름을 따서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Istanbul Atatürk International Airport)'으로 명명했다. 이곳은 한국으로 치면 인천국제공항과 같은 곳이었다. 이런 아타튀르크 사랑은 해외에도 유별나서 튀르키예인이 운영하는 케밥 식당에서 대부분 아타튀르크 사진이나 튀르키예 국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도 단순히 그냥 찍은 사진이나 초상화가 아닌 장소에 따라 다양한 사진들이 있다. 관공서나 군부대, 경찰서를 가면 군복 입은 아타튀르크 사진, 학교에 가면 책상에 앉아있거나 강의를 하는 아타튀르크 사진, 식당에 가면 식사하는 아타튀르크 사진, 카페에 가면 커피를 마시는 아타튀르크 사진, 놀이공원에 가면 그네를 타는 아타튀르크 사진(...) 등등. 그만큼 아타튀르크는 생전에 사진을 많이 남겼다. 더불어 고향인 그리스 테살로니키에 남은 아타튀르크가 태어난 집은 1933년 그리스 테살로니키시에서 튀르키예 공화국 10주년을 기념해 그 집에다 '아타튀르크 생가'라는 팻말을 세운 것을 계기로 1937년에 테살로니키시가 집을 구입해 아타튀르크에게 선물했다. 하지만 아타튀르크는 일이 바빠서 살아 생전에 이 집을 찾지 못했고, 이후 튀르키예 정부가 박물관으로 만들어서 관리하고 있다. 튀르키예인들이 그리스에 오면 이곳을 반드시 들른다고 한다. 그리고 [[앙카라]]에 있는 아타튀르크 농장(Atatürk Çiftlik Ormanı)에 가면 테살로니키의 생가를 완벽하게 복제한 집이 있다. 아타튀르크가 말년에 농사를 지으면서 쉬던 곳으로 지금도 이곳에서는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2014년]]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방이 1000개가 넘는 거대한 대통령 관저를 새로 지으면서 이곳 부지 일부를 침범했다. [[파일:external/www.1resimler.com/yeni_Turk_Lirasi.jpg|width=600]] [[튀르키예]] 국민들의 극진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아타튀르크]] 사랑으로 인해 이 나라 돈은 모두 아타튀르크를 주 도안으로 삼고 있다.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의 건국 초기부터 시작된 유구한 전통(?)이다. 딱 1번, 2년 동안 '화폐의 도안은 그 당시 대통령으로 한다'는 법안에 따라 [[이스메트 이뇌뉘]]의 초상이 걸리긴 했지만 당시에는 아타튀르크가 사망한지 얼마 안 되어서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매우 강했는데 화폐에서 아타튀르크의 초상을 떼어버리자 고인드립으로 받아들였는지 '어딜 감히 최고존엄을 놔두고 듣보잡이 걸리냐?'라는 매우 강력한 반발로 인해 무산되고 사문법화되어버렸다. 현재도 '이 곳은 건들면 안되는 성역이며 바꾸면 욕을 씨게 얻어먹고 지지율 나락간다'[* 한국도 화폐 도안 변경은 정치인들에게 이득은 없는데 '어딜 감히 최고존엄이신 세종대왕을/ 최고의 장군인 이순신 장군을 떼고 이것을 붙일려는 것이냐?' 는 등의 리스크만 있기에 도안 변경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암묵의 룰이 생겨서 화폐 도안은 모두 아타튀르크이다. 위의 사진의 화폐는 0자리 6개를 잘라내는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이후 탄생한 신 튀르키예 리라(Yeni türk lirası)로 2009년 발행된 신권도 앞면은 모두 아타튀르크를 도안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신 튀르키예 리라화의 아타튀르크가 지나치게 통통하게 혹은 뚱뚱하게 묘사되었다며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돈의 크기가 클수록 점점 '''[[자본주의|웃고 있다.]]''' [[파일:external/www.netyazari.com/yeni_200_lira-yunus-emre.png]] 2009년에 새로 발행된 지폐 시리즈 중 최고액권인 200리라짜리 지폐의 모습. 이번 시리즈에는 뒷면 도안을 튀르키예의 위인들로 채택했는데, 200리라 지폐 뒷면의 인물은 13~14세기에 살았던 시인 유누스 엠레(Yunus Emre)로 그가 남긴 유명한 시구인 "사랑합시다. 사랑받읍시다.(Sevelim Sevilelim)"가 함께 인쇄되어있다. 다만 아타튀르크에 대하여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아타튀르크가 일부러 자손을 남기지 않았던 것에서 시작됐다.] 튀르키예에서도 2010년에 아타튀르크가 동성애자라고 주장한 사이트들을 폐쇄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그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들은 아타튀르크를 욕한 것도 아니고 단지 성별적인 취향이라고 여기면 그만이라면서 이렇게 폐쇄하는 것은 옳지않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튀르키예에서 동성애자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생각하면, 아타튀르크를 동성애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욕 이상의 모욕으로 여겨지는 게 보통이다. 튀르키예에서 동성애자의 취급을 떠나서도 아타튀르크가 자손을 남기지 않은 것 때문에 동성애자 루머가 퍼지긴 했지만 그의 언행이나 인생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게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아타튀르크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지라 한때 에르도안 대통령이 아타튀르크 사진을 대통령궁에서 치우자 시위가 일어났을 정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